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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리뷰/영화 & 시리즈 theater

SERVANT, S1E3 "Eel" 스포일러 리뷰

by 리즈앤앨리 2021. 1. 18.

 

 

 

 

 

!!! SPOILER ALERT !!!

<Servant>의 직접적인 장면 설명 및 내용 노출이 있는 자유롭고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스포일러에 유의하세요. 감사합니다.  

 

 

 

 

 

 

 

 

리앤에 대해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의구심은 더욱 커졌다. 알아내려 할수록 걷어내야 하는 먹지가 겹겹이다. 고작 시골 출신의 어리숙한 소녀에게 당할쏘냐 덤볐는데, 상대는 생각보다 만만찮다. 영악한 줄리안의 머릿속이 바빠졌다. 불구덩이 너머가 잘 안 보이면 직접 뛰어들어야 하는 법이다. 그 방법이 비록 협박에 가까운 회유책일지라도.  

 

 

 

 

" All told, if you really squeezed... I think you could walk away with eighty. A hundred would be a push. But here's the thing. You're at the grown-up table now. And if you want to get to Dorothy, you're gonna have to go through me."

" 네가 정말 우리를 꽉 쥐고 흔들면... 통틀어서 80 정도는 가지고 나갈 수 있겠지. 좀 더 원한다면 100까지도.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야. 어른 대 어른으로 상대해줄게. 도로시를 건드리려면, 나부터 먼저 밟고 가야 할 거야."

" ...Were you here? When it happened. Did they call you for help? Did you see something?"  

" ...여기에 있었어요? 그 일이 일어났을 때요. 그들이 도움을 요청했던 건가요? 뭔가를 본 거예요?"

 

Julian and Leanne, "Eel"

 

 

 

줄리안의 주도로 대화를 시작했지만 정작 대화의 주도권은 리앤에게 있다. 줄리안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다. 리앤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또 궁금해했다. 그녀의 질문 의도를 미처 파악할 수 없던 줄리안은 회피해버리고 말았다.

 

리앤은 자신에게 불필요한 대화는 가볍게 넘길 줄 안다. 상대가 칼끝을 코앞까지 들이밀어도 쉽게 동요하지 않는다. 조금 서툴지는 몰라도 그녀의 대화법은 성질 급하게 달려드는 상대에게는 꽤 효과적이다. 그녀의 행동에는 확실한 의도가 있어 보인다. 그녀는 그 사건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션에게 들었던 것만으로는 불충분했다. 그래서 줄리안을 떠보았다. 그의 눈이 흔들렸다. 자리를 박차버렸다. 빙고. 월척이다. 리앤은 줄리안을 무너뜨릴무기를 찾았다.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SERVANT, S1E3 "Eel"

My Favorite Top 5 Moments.

 

 

 

top 5. Eel 

 

Servant S1E3 "Eel"은 리앤에게 초점을 맞춘 에피소드다. 이번 편에서 리앤의 다양한 모습과 조금씩 달라지는 인물들과의 관계를 리앤을 중심으로 볼 수 있다. 그중 단연 눈길을 끌었던 것은 장어와 관련된 장면이었다. 이유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터너 가족이 요리하는 일상의 음식들이 그녀에게는 반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그 비주얼이 심히 불편하고 충격적이긴 했다. 작중 요리 장면을 모두 좋게 보았던 나도 이 장면에서는 그 말 취소. 심지어 망치와 못까지. 음식을 위해 잔인하게 살생하는 그 모습이 그녀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는지 결국 기절하고 만다. 그러나 내가 진짜로 의아하게 느꼈던 것은 그 장면이 아니라, 그 이후의 것이었다. 

 

부부가 데이트를 위해 집을 나가고 난 후 토비와 함께 저녁거리를 찾던 그녀는 직접 본인의 손으로 장어를 잡는다. 션이 하던 것을 그녀가 (안 좋은 의미로) 인상 깊게 보고난 후였다. 트라우마였을 텐데 곧잘 극복했다. 그녀의 순수한 표정은 덤이었다. 오히려 놀라는 쪽은 토비였다. 과연 어떤 의미에서 그녀가 장어를 '살생'했는지 모르겠다. 어른들인 션과 도로시가 그랬던 것처럼 그 행위를 따라 함으로서 자신도 어른인 양 굴고 싶었을 수도 있다. 또래인 토비 앞에서 자신도 너처럼 이런 일 정도는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일 수도 있다. 도로시를 향한 동경의 표현으로, 그녀의 파트너인 션이 하는 일을 따라 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단순히 10대 소녀가 가진 객기였을 수도 있다. 혹은 애초에 모든 것이 그녀의 연기일 수도 있다. 

 

홍합과 마찬가지로 율법 측면에서 보았을 때 장어는 부정한 음식에 속한다. 찾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인데 토끼 또한 마찬가지다. "Reborn"에서 토끼 음식이 나왔던 것이 그저 우연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돼지, 수리, 매, 부엉이, 갈매기, 박쥐, 물고기가 아닌 해산물, 뛰거나 날 수 있는 것을 제외한 기어 다니는 벌레 등도 금지하고 있다. 다시 한번 덧붙이지만, 무교인으로서 이를 종교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무지한 것이 사실이고 함부로 성경을 해석할 수도 없지만, 작중 션의 요리들은 꽤 중요도 있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게 확실하다. 앞으로 또 어떤 음식들이 나올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바로 도로시의 대사다.


" Funny things, eels. They don't quite realize when they're dead." 

" 재밌는 생물이야, 장어들은. 쟤네들은 자기가 죽었는지도 모르거든."

 

Dorothy, "Eel"


의미 있는 발언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복선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제리코의 죽음에 대해 도로시 자신이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당사자의 입을 빌려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자식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자신이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일 테니, 제리코의 죽음은 곧 도로시 자기 죽음과 같았을 터다. 그런데 그녀는 그 기억을 부정하고 피하고 있으니, 이렇게 보면 장어는 곧 도로시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몸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은 죽은 장어처럼 말이다. 

 

찾아보니 어떤 이들은 이 대사를 두고, 등장인물은 모두 죽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리앤은 그들을 심판하러 온 신의 사자가 아닐까, 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들은 현재 림보나 연옥에 빠져있고 이 모든 것은 그들만을 위해 만들어진 환상이다, 라는 해석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집 밖에서 무엇을 하는지 우리는 볼 수도 알 수도 없다. 우리의 눈은 집 안에 박혀 있는 상태이고(우리가 마치 림보나 연옥에 빠진 기분이다), 제삼자도 아닌 본인들의 말을 통해 그들이 밖에서 무엇을 하고 온 것 같다고 이해하고 진행되기 때문.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이 밖에서 무엇을 하든 간에 도로시의 취재 방송까지 포함해서 죄다 그들이 지어내는 환상일 뿐이고 토비나 로스코, 이후에 나올 완다 같은 인물들도 모두 허구일 수 있다. 흥미롭다.

 

어떤 복선으로서 나온 말이건 간에 도로시의 말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주는 대사다. 물론 단순한 red herring일 수도 있다. 

 

 

 

top 4. 션

 

션이 제리코를 껴안은 것은 해당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아기방에서 홀로 우는 아이를, 션은 차마 무시할 수 없었다. 그의 품 안에서 아이는 안정을 되찾았다. 이전까지는 볼 수 없던 그의 모습이었다. 아기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인형을 제 아이 대신 안아야 했다. 그것은 그가 아내 앞에서 슬픔을 삼켜야 하는 것만큼이나 큰 고통이었다. 그렇게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와중에 리앤과 제리코가 나타났다. 날이 갈수록 리앤이 그의 이성을 마구 헤집어 놓고 있다면 그와 반대로 제리코는 점점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진짜 아기로부터 받는 위안. 제 아들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션은 제리코에게 순수한 위안을 찾은 것 같다. 

 

 

션의 미각 상실은 계속되고 있다. 맛을 느낄 수 없어 토비에 의지해 요리했고, 레스토랑에서도 괜히 까다롭게 굴어댔다. 더할 나위 없이 그의 일상은 최악이다. 리앤에 대해 파고들 때마다 답답한 속은 쌓여만 가고, 도로시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고, 줄리안은 줄리안대로 잔뜩 흥분해서 그의 심경을 쑤셔놓기를 여러 번. 이리도 힘든 날, 그가 아기를 안았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줄리안의 말대로 도로시가 환상에서 깨어나지 않을 경우의 수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확률이 더 높을 지도 모른다고. 도로시가 믿는 세상이 곧 그의 세상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지금 이대로 사는 것이 더 쉽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top 3. Wisconsin

 

리앤의 정체만 확실했어도,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받을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을 고용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녀는 대체 누구일까. 이를 알아내기 위해 줄리안은 그가 개인적으로 일을 맡긴 로스코와 함께 위스콘신으로 향했다. 그녀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서류상 그녀의 출생지가 위스콘신이라는 것과 그 외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래서 새벽 첫 비행기를 타고 곧바로 위스콘신으로 날아갔다. (이 장면에서도 션과 줄리안의 영상통화로서 위스콘신을 보여준 것이 재밌었다. 작중에서는 결코 집을 떠나는 법이 없다.)

 

 

줄리안과 로스코는 오랜 시간을 할애해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집은 반소화재로 대부분이 시커멓게 그을려있었다. 내부 그 어디를 보아도 도저히 누가 살 만한 집의 모양이 아니었다. 집은 버려졌고,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곳에 션이 한눈에 알아볼 만한 것이 있었다. 문제의 그 십자가다. 한 번만 보아도 잊을 수 없는 모양의 그 십자가는 불이 닿은 흔적도 없이 멀쩡했다. 아무래도 십자가가 먼저 걸려 있었고 그 후에 불이 난 것 같다. 십자가만 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십자가 주변도 어떤 보호를 받은 것처럼 그을린 흔적이 없었기 때문. 또다시 그녀의 종교가 중요한 요소로 불거지는 이유이다. 

 

서류상 알 수 있는 그녀의 집은 이것뿐이라 하도 수상해서 그들은 마을 공동묘지에 들러 확인해본다. 주변에 그들의 거취를 알 수 있는 이웃이 없었던 모양인데, 다행히 묘지에서 의외의 정보를 얻었다. 리앤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가 바로 그것이다. 2001-2007로 짧은 생을 살다 간 아이의 묘비였다. 단박에 줄리안은 그녀가 예사로운 상대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top 2. 리앤 vs 줄리안

 

줄리안이 생각하기에 그녀는 죽은 이의 신원정보를 훔친 범죄자다. 분명 그녀에게 추악한 목적을 가지고서 도로시에게 접근한 것일 테다. 어쩌면 제리코에 대한 비밀을 까발리겠다 협박할 수도 있다. 까발리고자 하는 대상이 대중이어도, 혹은 도로시 하나여도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들은 지금까지 제리코에 대한 '진실'을 도로시로부터 철저히 숨기기 위해 노력해왔다. 때문에 제리코의 사망신고도 법적으로 하지 않은 상태. 난데없이 아기가 나타났을 때도 섣불리 경찰을 불러 조사를 하지 못한 것도 도로시 때문이었다. 그녀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모래성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것을 원치 않다 보니 공식적으로 일을 크게 만들 수도 없었다. 그들로서는 딱 협박받기 좋은 위치인데, 이를 직감한 줄리안이 먼저 그녀를 도발해보기로 했다. 진짜 그녀가 원하는 게 뭔지, 그 속마음을 먼저 알고 둘 사이에 우위를 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녀는 그의 도발에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역질문에 줄리안이 당황해 뒷걸음질 쳐버렸다. 도대체 그날 여기에서 무엇을 보았느냐니, 이게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는 질문인가. 줄리안의 머리는 잠시 멍했다가 곧 복잡해졌고 언짢은 감정을 숨길 수가 없다가 도저히 이해 못 할 그녀의 행동에 압도되고 말았다. 보기 민망할 정도의 완전한 패배다.

 

리앤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줄리안에게 던졌던 질문에 대해 그가 당황하는 것을 봤을 때, 제대로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현재로서 그녀가 알고 있는 게 무엇인지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지만, 적어도 그녀가 줄리안 앞에서는 션이나 도로시 앞에서와는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의 질문에는 '그 사건'에 대해서 그녀는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그녀는 '그 사건'에 대한 전말은 모르고 있고, 그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확실히 그녀만의 목적이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리앤으로서는 그녀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알아낼 수 있는 상대를 찾은 셈이다. 그녀의 목적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줄리안의 말대로 - gonna have to go through 'him' - 그를 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리앤과 줄리안의 대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앞으로 리앤을 주시하는 줄리안의 시선을 따라갈 이야기가 기대된다. 줄리안의 성격상 여기에서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리앤이 위험인물임을 확신한 마당에 절대 물러날 수가 없다. 돈이 필요하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부유한 생활, 전문직 부부, 고급스러운 집. 당연히 이런 타깃을 두고 협박을 한다면 돈 말고 원할 게 또 뭐가 있단 말인가. 

 

당연히 시청자의 입장에서 리앤이 원하는 것은 단지 돈이나 금품이 아님을 안다. 그녀는 일차원적인 욕망보다는 진실이나 앎과 같은 상위 개념의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 그 무언가가 최종 목적이라고 말하기는 섣부르지만 줄리안의 생각만큼 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그녀를 중심으로 무언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션은 어렴풋이 그것을 느끼고 있는 당사자이고, 줄리안은 전혀 모르고 있다. 줄리안의 접근 방식은 아마도 리앤에게 조금의 해도 끼치지 못할 것이다. 리앤도 그것을 알고 있을 터이니 그다지 그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일 테다.

 

그러나 리앤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줄리안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는지는 의문이다. 그녀도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못하다. 어쩌면 그녀가 최종 보스가 아닐 수 있다. 그녀 배후에 일을 시킨 누군가가 있는 것이다. 

 

 

 

 

 

top 1. 동경

 

사회생활을 해본 적 없는 소녀가 전문직 여성을 바라볼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다. 사랑이라는 것을 해보지 않은, 혹은 서툴기만 한 소녀가 사랑하는 남편을 가진 성인 여성에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다. 멋지고, 부럽고, 그렇게 되고 싶다는 그 감정. 리앤은 도로시를 동경하고 있다. 리앤에게 도로시는 일종의 롤모델 같다. 도로시를 관찰하고 따라 하는 것은 그녀의 유일한 취미다. 리앤은 매일 밥을 먹으며 TV 속의 도로시를 본다. 도로시의 방으로 들어가 도로시의 반지를 끼워본다. 그녀의 립스틱도 바른다. 그녀의 거울을 보며 도로시를 따라 해본다. 그녀처럼 웃어본다. 그녀처럼 말해본다. 그리고 그녀처럼 행동해본다. 

 

 

이날은 도로시의 키스를 관찰했다. 션과 함께 나누는 어른의 몸짓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리앤은 그녀처럼 되고 싶었다. 어쩌면 도로시에 이입하여 션으로부터 받는 그 사랑을, 리앤도 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운 좋게도 집 안에 토비가 남아 있었다. 경직된 자세였지만 성숙한 어른처럼 토비에게 말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는 그 대화가 매우 어색하다). 그 앞에서 장어를 손수 때려잡은 것도 그 일환이었을 것이다. 또 그와 함께 레드와인을 마시고, 장어구이를 메뉴로 꽤 근사한 저녁을 차렸다. 그리고 눈치 없게 줄리안이 왔다. 

 

리앤이 줄리안에게 했던 그 무모한 행동은 어쩌면 토비에게 했을 행동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딱히 계획이 틀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상대가 누군 지와는 관계없이 같은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도로시처럼 한껏 꾸미고 도로시가 했던 행동을 되새김질해보자 마음 먹었을 때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즉흥적인 행동이었을 수도 있다. 줄리안이 그녀를 코너에 몰아넣고자 쿡쿡 쑤셔대며 어른 대 어른으로 이야기해보자 하니 마침 잘 됐다, 하며 '어른답게' 반격한 것일 수도 있다. 그녀로서는 다행히도 줄리안이 그녀를 거부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리앤은 줄리안이 어떤 사람인지 - 얼마나 무모하고, 경솔하고, 무례한 사람인지 경험해 본 기회가 되었다. 

 

어떤 생각이었든 간에, 리앤은 도로시처럼 행동했다. 여전히 그녀의 반지를 손가락에 낀 채였다. 도로시는 어쩌면 이에 대해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도로시처럼 예민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소중히 하는 패물의 위치가 조금만 바뀌었어도, 립스틱이 다른 모양으로 조금 깎여 있어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뢰하는 리앤이니만큼 눈 감고 넘어가 준 것일 가능성이 있다. 도로시는 아래와 같은 말을 하며 공식적으로 자신의 물건을 써도 된다는 허락을 한다. 


" You know, if there's ever anything of mine that you wanna borrow, all you have to do is ask." 

" 있잖아, 내 물건 중에 어떤 것이든 빌리고 싶은 게 있으면 말만 하면 돼."

 

Dorothy, "Eel"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을 들은 직후 리앤은 도로시에게 그녀가 새로 산 신발을 빌려주었다. 도로시의 그 말이 단순 허락이 아니라 반강제적인 교환의 의미로 들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단순히 선물의 의미로 도로시에게 내준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좀 더 후자에 마음이 가는데, 내가 동경하는 대상이 무려 나의 신발을 빌려 신고서 행복해한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도 없을 테니까. 그래서 리앤은 단순히 호의로 그랬을 수 있다. 그렇게 리앤은 도로시에게 빨간 구두를 빌려주었다. (그리고 본인은 또 허락 없이 그녀의 반지와 립스틱을 빌려 썼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도로시와 빨간 구두. 그 유명한 오즈의 마법사 아니던가. Red herring 늪에 빠지고 싶지는 않지만 잠시만 삼천포로 빠져 쓸데없이 과해석해보자면, 도로시는 도로시. 빨간 구두를 준 리앤은 동쪽 마녀. 혹은 구두를 신으라고 주었던 북쪽 마녀. 도로시는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오즈에 떨어지면서 사악한 동쪽 마녀를 죽였다. 나쁜 동쪽 마녀가 신고 있던 빨간 구두(원문에서는 은 구두였으나 영화판에서는 루비 구두로 각색되면서 '빨간 구두'로 유명해졌다)를 착한 북쪽 마녀가 도로시에게 전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얻게 된 빨간 구두는 도로시에게는 일종의 자신감을 주는 아이템이며, 모두가 빼앗고자 하는 욕망의 아이템이자, 또한 집으로 가고자 했던 그녀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마법의 아이템이다. 그래서 어쩌면 리앤이 도로시에게 제리코를 '주었다'고 한다면 제리코가 바로 빨간 구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심각하게는 받아들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실제로 작가가 오즈의 마법사에서 몇몇 캐릭터를 차용했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아 보인다. 

 

중요한 것은, 리앤은 이렇듯 어른을 동경하는 단순한 어린 소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도 이미 언급한 것처럼 그녀가 최종 보스가 아닐 거라는 것이다. 그녀는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터너 가족의 Servant가 아닌, 어떤 누군가의 servant일 수 있다. 줄리안이 생각하는 것만큼 단순히 코앞에서 그들을 농락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함정이 마련되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그 깊숙한 함정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살아있는 아기를 이용해 사람을 가지고 놀 줄 아는 놈들이라면, 무엇이든 못하겠는가. 


" Did she know she was gonna find a doll?"  "저 애가 인형을 보게 될 거라는 건 알았을까?" 

" She didn't seem surprised."  " 보고도 놀란 것 같진 않았어."

" Then who f**king told her? No one knows sh*t about our business." 

" 씨* 그럼 대체 누가 얘기한 거야? 아무도 우리 일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 You think this is blackmail?"  " 우리를 협박하려는 걸까?" 

" I don't know what this is. But the longer that things stays here, the more it's gonna cost you." 

"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저게 여기에 더 오래 있을수록 돈은 더 많이 나가게 될 거야." 

 

Julian and Sean, "Eel"


 

 

 

 

<그 외의 흥미로운 것들>

 

* 공동묘지에서 그레이슨 일가족의 묘비를 통해 알 수 있는 이름들 : 리앤의 아빠로 추정되는 인물은 스테판 그레이슨 Stephen Grayson, 엄마로 추정되는 인물은 로라 그레이슨 Laura Grayson.

 

* 이번화에서 유난히 "빨간"색에 집착했다. (1) 장어 살 속으로 비치는 빨간 피, (2) 도로시의 빨간 패턴 로브, (3) 리앤이 도로시에게 빌려준 빨간 구두, (4) 리앤이 훔쳐 바르는 빨간 립스틱, (5) 리앤이 토비에게 부탁하는 빨간 와인, (6) 식탁 위 세팅한 빨간 냅킨, (7) 토비가 요리한 장어구이의 빨간 소스까지도. 

 

* 터너 부부가 사는 집은 그들의 완벽한 취향에 맞춰진 공간이 아닐 수도 있다. 줄리안이 언급한 대로 집에 박힌 벽돌과 회반죽 한 덩이, 집 안에 들어선 고급스러운 가구들조차 그의 아버지 취향이라면, 그들의 집은 그대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사는 것이 된다. 또한 이들 부부는 생각보다 돈이 많지 않을 수 있다. 전문직으로서 돈을 잘 벌기는 하지만 도로시는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을 늘 가지고 있기도 하다. 션 또한 정규직이 아니다. 줄리안이 리앤에게 본론에 앞서 '고급스러운' 집을 유지하려면 유지비가 꽤나 든다는 말을 한 것으로 보아 그들 수중에는 쥐어짤 현금이 그다지 없음을 넌지시 알려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후 션과 줄리안의 대화에서도 돈이 많이 들 거라는 예상에, 그들이 서로 난색을 보인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 펑펑 넘쳐나는 돈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당장 내쫓을 수 있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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