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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리뷰/영화 & 시리즈 theater

SERVANT, S1E1 "Reborn" 스포일러 리뷰

by 리즈앤앨리 2021. 1. 12.

 

 

 

 

!!! SPOILER ALERT !!!
<Servant>의 직접적인 장면 설명 및 내용 노출이 있는 자유롭고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스포일러에 유의하세요. 감사합니다.  

 

 

 

 

 

처음부터 비가 내린다. 신경을 거슬릴만큼 날카로운 현의 소리와 낮게 깔리는 음울한 천둥소리가 들린다. 불길하고 불안하다. 게다가 밤이다. 어둡다. 지나다니는 행인도 없다. 모든 것이 서늘하다. 서번트의 이야기는 이토록 낮은 온도에서 시작한다. 

 

Servant는 현실의 아무나 겪을 수 있지만 흔하지 않은, 일어나기엔 너무나도 끔찍한 비극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비극의 중심에 한 가족이 있다. 그들은 함께 겪은 고통을 서로 분담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꼭꼭 씹어 소화하고자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이가 그 가족의 공간에 들어왔다. 고통에 침투했다. 내 방식대로 풀어내려던 고통이 그 낯선 이로 인해 변질되었다. 다시금 분노로 변모했다. 감당하기가 어려워진다.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할 지 가늠하기 힘들다. 가슴이 아프다. Servant는 그렇게 무진히 슬픈 사람들의 이야기다. 

 

Servant 공식 포스터 중 하나. 이 버전이 그나마 제일 '덜' 공포스러운 버전이다.

 

사실 트레일러조차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 시리즈에 대해 가졌던 정보라곤 시리즈를 대표하는 포스터 이미지와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제작에 참여했다는 것, 그리고 루퍼트 그린트가 출연했다는 것 뿐이었다. 솔직해지자면 내 관심은 온통 루퍼트 그린트였다. 대체 그의 역할이 무엇이며, 어떤 이야기를 해줄 지, 어떠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지 궁금했다. 물론 포스터의 첫인상은 공포 그 자체였어서 과연 내가 이 시리즈를 감당해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분명 샤말란 감독의 작품들에 대한 뭔지 모를 아련한 향수가 있었고, 미루어 짐작해보건데 서번트는 분명 기묘하고 슬픈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정도 반전이 있다면 더 좋을 것이고.

 

그러다 모든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지며 순식간에 이야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충격을 받았다. 얼얼함을 느끼며 2화, 3화로 빠르게 넘어갔다. 어느 새 시즌 1을 눈 깜짝할 새에 끝내버렸다. 매 편의 이야기는 매순간 내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길로 새어들어가서 여러가지 의미로 내 감각을 일깨웠다. 뒷통수를 맞은 듯 했고, 소름이 돋았고, 기괴했고, 무서웠다. 그리고 순식간에 모든 걸 아득히 넘어선 슬픔이 나를 잠식했다.

 

서번트 시즌 1의 1화, "Reborn"은 M. 나이트 샤말란이 직접 감독했다. 에피소드 제목의 의미는 작중 인물인 션의 대사로부터 짐작할 수 있다. 도로시에 대한 중의적인 표현일 수도 있으며, 또한 에피소드 말미에 대한 중의적인 의미이기도 하다. 

 

 

 

" It's called a reborn doll. "이건 'reborn doll'이라고 하는 인형이야. 
We lost Jericho when he was 13 weeks.  우리는 제리코를 잃었어. 생후 13주에. 
Just didn't wake up one morning, poor little guy.  어느 날 아침에 그냥 일어나질 않았어. 가여웠지.
Dorothy took it hard.  도로시는 힘들어했어.
She was catatonic for weeks. Full psychotic break.  몇 주를 긴장증 상태로 보냈어. 정신이 완전히 무너졌지.
And this is the only thing that brought her back."  그리고 그게 그녀를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한 거야."


- Sean, "Reborn"

 

 

Reborn doll은 사실 직역하기가 힘들다. 매우 매우 리얼하게 만든 아기 인형을 통틀어 부르는 고유명사로 이해하는 것이 더 쉽다. 실제 수집취미로 이 인형을 모으는 사람들도 있다고. 극 중 도로시처럼 치료방법으로도 사용되는 모양이지만 아직도 그 효용성이 완전히 검증된 것 같지는 않다. 도로시는 인형 덕에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고, 후에 이 reborn doll은 정말 '다시 태어났'다. "Reborn"이라는 제목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의미로 사용된 것 같다. 

 

약 33분의 러닝타임으로 그 양이 적어보이긴 하지만 내용은 결코 얇지 않은 에피소드다. 시청자로 하여금 한 가족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잘 짜여진 세팅을 기반으로 등장인물의 등장을 잘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몰입도가 마치 연극과 같이 느껴졌는데, 아마도 그들의 모든 이야기가 '집'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그들의 동작들은 생각보다 동적인데, 카메라는 그다지 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가 연극을 볼 때 고정된 프레임 안에서 움직이는 등장인물을 관찰할 때와 같은 기분이다. 인물에 초점을 맞춘 장면도, 분위기 자체에 초점을 맞춘 장면도, 배우가 카메라에 대고 직접 대사를 전달하는 장면들까지도. 마치 직접 연극을 관람하고 있는 관객이 된 것 같다. 이런 섬세한 장면들, 심지어 멋들어진 장면들이 스산한 배경 음악과 배우들의 표정, 그리고 대사와 모두 함께 어우러져 서번트만의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등장인물이다.

 

 

1. 도로시 터너 Dorothy Turner

 

" Confident, responsible and determined.

I'm the eldest of two."  
" 자신감 넘치고, 책임감 있고, 결단력 있는 성격.

내가 둘 중 맏이거든요." 

- Dorothy, "Reborn"

 

그녀는 션 터너 Sean Turner의 아내이자 제리코 Jericho의 엄마다. 필라델피아 지역 뉴스의 유명 기자로 그녀는 늘 바쁘며 그럼에도 자기 관리가 철저한 편이다. 본인이 말했듯 자신감 넘치고, 책임감과 결단력 있는 성격으로 보인다. 적어도 몇몇 부분에 있어서는 그렇다. 그러나 남편인 션과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만은 않다. 선을 넘지 않는 정도에서 가끔 아슬아슬한 대화를 이어나가기도 하며, 그럴때면 일터에서의 그녀 모습과는 다르게 집에서는 지친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몸도 그렇게 성치는 않아서 매일을 산후 젖몸살로 고생중이고, 아직 어린 아이때문인지 꽤 예민하다. 일터로 복귀하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아이인 제리코를 돌봐줄 돌보미로 리앤 Leanne을 고용한다. 그녀는 낯선 사람이지만 왠지 믿음이 간다. 그녀에게 의지하고 싶다.

 

 

 

2. 션 터너 Sean Turner

 

" Spoiled, selfish and critical of others."  
" 버릇 없고, 이기적이고, 남 비판하길 좋아하고."
" Classic male only child."  " 전형적인 외동아들이죠."
- Sean and Dorothy, "Reborn"

 

그는 도로시의 남편이며 제리코의 아빠로, 업계에서는 꽤 인정받는 셰프이자 요리연구가다. 필라델피아 내 유명 레스토랑에 메뉴 관련 자문 역할을 하는 것이 주업무이자 유명인이 포함된 만찬 행사 등의 출장요리 서비스도 무리없이 진행해내는 능력자. 그럼에도 그의 얼굴은 많이 수척하고 피로에 쌓인, 누구보다 슬픈 모습이다. 마치 겨우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위태롭고 안쓰럽다. 그런 그에게 리앤의 등장은 그리 달갑지 않다. 굳이 낯선 사람인 리앤을 집으로 들이기 싫었다. 심지어 어딘가 수상하고 이상한 그녀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리앤을 두고 도로시와 의견충돌하기도 여러 번. 그러나 늘 진정 하고 싶은 말은 와인과 함께 다시 삼켜버리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있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을 마주한다.

 

 

 

3. 줄리안 피어스 Julian Pearce

 

" Is... she here?"  " 그 여자... 있어?"
" You came all this way to check out the nanny?"
" 보모를 보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 I waited till almost a week, and I think I've been pretty respectful."
" 거의 일주일을 기다렸어. 이 정도면 꽤 예의를 차린 거라 생각하는데."
- Julian and Sean, "Reborn"

 

그는 도로시의 남동생이자 션에게는 처남이다. 제 마음껏 집을 들락날락할 수 있을 정도로 누나 부부와는 꽤 친밀하며, 일종의 '비밀'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사이다. 도로시가 리앤에게 의지하고 있다면, 션은 줄리안에게 의지하는 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지라기 보다 그의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인 셈. 줄리안은 션과는 달리 다소 거칠다. 험한 말을 서슴치 않으며 직감적이다. 션이 정적이라면 줄리안은 그 반대여서 좀 더 적극적이고 저돌적으로 가족에게 닥친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비밀을 품은 이 가족 내에 낯선 이가 들어온 것이 내심 신경쓰인다. 더 이상 나쁜 일은 없어야 한다. 최악은 피해야한다. 그래서 그녀를 집요하게 주시하기 시작한다.

 

 

4. 리앤 Leanne

 

" What are your goals in life?"  " 인생의 목표가 뭐예요?"
" I guess to be happily married and to raise children of my own someday." 
" 아마도 행복한 결혼생활이겠죠. 언젠가는 제 아이들을 키울 거고요."
- Dorothy and Leanne, "Reborn"

 

그녀는 터너 부부가 고용한 돌보미로 말쑥한 모습의 어린 소녀다. 18살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함, 짙은 갈색의 긴 생머리와 깡마른 몸매, 창백한 피부와 큰 두 눈 때문인지 그녀는 마치 인형같다. 표정도, 감정도 잘 드러내지 않는 그녀의 존재는 다소 어색하다. 도로시는 그녀가 집에서 머물며 제리코를 돌봐주기를 원했기에 리앤은 부부의 집 제일 꼭대기 층에 머물며 가족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녀를 탐탁치 않게 바라보는 션의 눈빛을, 그녀는 곧바로 읽어냈다. 그러나 그녀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줄 안다. 늘 미소와 예의바른 말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도로시를 향한 무언의 동경을 품고 헌신적으로 제리코를 돌본다. 

 

 

 

 

 

 

 

SERVANT S1E1 "Reborn"

 내가 사랑한 다섯 가지. My Top 5 Favorite moments. 

 

 

top 5. the Turner's House 

 

남편의 주공간인 키친 & 다이닝룸과 지하의 식품창고 & 와인 셀러. 아내의 주공간인 부부의 안방과 드레싱룸, 그리고 프라이벗한 욕실. 그리고 그 옆에는 제리코의 아기방. 넓고 멋들어진 그들의 집은 부부의 취향으로 가득한 공간. 터너 가족의 집은 아름답다.

 

집은 소중한 곳이다. 생활의 터전이자 사랑을 나누며 편안히 휴식할 수 있는 곳. 그래서 안전해야 하는 곳이다. 그런 공간에 낯선 이를 들인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마음을 놓으려고 해도 불안감부터 엄습한다. 내 아이를 돌봐야 하는 사람이라 더더욱 그렇다. 과연 우리 가족에게 좋은 사람일지 재보게 되고 설마 제 2의 인격이 있는 건 아닐지 자꾸 의심하게 된다.

 

그래도 도로시는 리앤을 두 팔 벌려 환영하며 들뜬 마음으로 집부터 소개했다. 2층의 아기방을 지나 한 층 더 올라가면 리앤의 방이 있다. 집 안 내에서 가장 추운 방이다. 리앤은 별다른 말 없이 자신의 의무를 받아들고 짐을 풀었다. 그렇게 리앤은 그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집의 실내는 간접조명이 많아 전체적으로 어둡다. 노오란 조명이 따스하게 보이다가도 추운 겨울에 켜놓은 촛불 하나처럼 어딘가 서늘하고 쓸쓸하다. 값비싼 가구들이 고풍스럽게 보이다가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끼익끼익거릴 것 같은 스산함이 있다. 직업적으로 성공한 터너 부부인 만큼 화려하고 잘 꾸며놓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사치를 부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당연히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보이는 리앤과는 대조적으로 그들의 삶은 매우 세련됐다. 

 

 

 

사실 터너 가족의 집이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서번트의 이야기는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고 이곳에서 이어지는, 유일한 극의 배경이기 때문이다. 마치 연극무대의 고정된 배경과도 같다. 등장인물들이 일터를 간다던지 산책을 간다던지하는 이유로 집에서 떠난다한들, 관객인 시청자들은 집을 떠날 수가 없다. 폐쇄 공간. 바로 이 특유의 공간 덕에 보는 내내 이 이야기가 과연 현실인지 환상인지 헷갈릴 정도. 시청자로 하여금 환상을 자극하기 위한 의도였을 지는 미처 알 수가 없지만, 어쨌든 터너 가족의 집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 생각이 들었는지 서번트의 제작진은 이 집을 아예 세트장으로 지어버렸다고(외관은 필라델피아의 실재하는 어느 집이 맞지만, 실내는 모두 세트장이다). 또 인테리어까지 제대로 잘 만들어놔서 어디를 찍어도 보기 좋은 영상미는 덤이다. 이토록 매력적인 그들의 집. 내가 서번트를 사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top 4. 등장인물들의 첫인상, 그리고 클로즈업 

 

또 좋았던 것 중에 하나는 등장인물 모두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엄마는 예민하고 약간은 강박적이며, 아빠는 침울하고 경계심이 많다. 삼촌은 다혈질이고 직선적이며, 낯선 이는 정체도 속내도 도통 알 수가 없다. 외향적으로나 대사로나 느껴지는 그 개성들이 좋았다. 등장인물 간의 긴장된 플레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드라마가 될 것이기에. 

 

이러한 다이나믹을 극대화 시켜준 것이 바로 등장인물들에 대한 클로즈업이라고 생각된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카메라의 움직임은 굉장히 정적이기에 매우 차분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등장인물은 그 프레임 안에서 그다지 정적이지 않다. 이러한 촬영 기법에 이름이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등장인물 간 긴장감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몰입도를 높이는 데 꽤 중요하게 작용한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특히 줄리안을 제외한 모두가 거의 카메라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연극에서의 독백처럼. 자세히 보면 초점이 '관객'인 나와 약간 어긋나기는 하지만 충분히 압도적이다. 위 사진의 상단 왼편의 장면은, 포커스만 왔다갔다하며 도로시와 션을 번갈아 비출 뿐 카메라는 저 위치 그대로다. 짧지만은 않은 시간 동안 도로시의 독백같은 대사를 그녀의 풍부한 표정과 제스쳐와 함께 지켜보았을 때의 첫 느낌은 꽤나 강렬했다. 같은 씬에서 리앤도 번갈아 클로즈업으로 비춰지긴 하지만 이 씬의 포커스는 바로 도로시로, 그녀의 성격과 첫인상을 전달하기에 제격이었다.

 

상단 오른편의 리앤과 그 바로 아래 션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대화장면인데, 그녀가 웃고는 있지만 옆에 든 인형보다 더 인형 같아서 매우 기괴하다. 그리고 예쁘고 수줍은 목소리로 알 수 없는 말을 해대니 션의 저 혼란스러운 표정이 곧 나의 표정이었다. 사실 이 장면은 굉장히 중요했다. 션은 이 장면에서 꽤 많은 설명을 한다. 카메라를 향해 응시하며 관객에게 직접, 그의 가족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극 중 매우 중요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장면이었기에 션의 이러한 '클로즈업' 설명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줄리안과 션과의 대화 장면에서는 조금 다른 느낌이지만 둘 다 모두 클로즈업, 더구나 줄리안이 대화 내내 마시는 술잔과 담배와 그의 거친 제스쳐도 모두 함께 클로즈업으로 드러낸 장면이기도 하다. 카메라 앵글 안에서 움직이는 두 사람의 클로즈업된 얼굴과 분위기가 매우 대조적이라 더 마음에 들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이 무엇인지, 처한 상황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했던, 또한 중요했던 장면. 

 

 

 

top 3. 와인과 위스키 그리고 음식 

 

 

위에서 클로즈업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사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와인에 초점을 두고 션과 도로시의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 심지어 저 상태로 꽤 오랫동안 응시하게 만든 장면은 정말 마음에 든다. 둘의 대사가 들리는 와중에 얼굴은 보이지 않고 두 사람의 손만 비추는데, 두 사람 사이에서 느껴지는 불안과 긴장의 공기, 서로 주고 받는 대화에 반응하는 서로의 손짓, 그 속에서 보여지는 서로에 대한 그들의 걱정. 그들의 현 상황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확실치는 않지만 위스키 같은 알코올에 소다수를 첨가하고, 그것을 섞기 위해 당혹스러울 정도로 쾅쾅거리며 술잔을 책상에 내리꽂는 장면에서도 클로즈업이 사용되었다. 이 장면은 꽤 짧지만 줄리안의 성격을 잘 드러냈다. 연신 홀로 험한 언사와 거친 행동을 하는 줄리안. 친구 같은 두 사람이 대화를 할 때도 정적인 표정으로 일관하는 션과는 달리, 줄리안은 (어쩌면 제 누나와 같이) 표정도 다양하고, 그새 바삐 담배도 피우고, 술도 걸걸하게 마시는 등 꽤나 부산하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금은 불편하고 껄끄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션이 할 수 없는 일을 그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걸 드러내는 게 중요했다. 

 

반대로 지하에 있는 와인셀러나 요리 플레이팅하는 모습은 션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물건을 아끼며, 정돈이 잘 되어 있고, 프로페셔널하며, 누군가와는 다르게 부산함과는 거리가 좀 멀다. 감정을 내세우기 전에 생각을 먼저 하는 스타일이기에 침착한 사람이기도 하다. 조금은 예민한 성격을 가진 도로시를, 아마도 션이 받아주는 편이었을 것이다. 또한 어둡고 칙칙할 수 있는 작중의 분위기를 그나마 생기있게 만들어 주는 건 바로 그의 형형색색 음식들이다. 작중 내내 그가 요리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영상미에 눈이 황홀할 지경. 심지어 그저 음식재료를 보여주는 데도 어찌나 좋은지. 어지러운 기분을 조금이나마 요리라는 행위로 덜어내려고 하는 모습이나, 음식으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려고 하는 모습들이 모두 션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top 2. 루퍼트 그린트 Rupert Grint 

 

루퍼트 그린트의 존재는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 우선 모든 이야기를 각설하고, 서번트 시리즈를 보게된 것 자체가 이 사람 때문이니까. 그가 무슨 역할을 맡던지 간에 그를 볼 생각에 마냥 기쁜 마음으로 시청을 시작했다. 서번트는 그의 가장 최근작이며, 내가 생각했을 때 연기 면에서 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작품이기도 하다. 시즌 1을 모두 시청한 상태에서 말하자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토록 누나를 아끼는, '타락'한 남동생을 연기할 수 있는 다른 배우가 또 있을까. 왜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 

 

뿌리 깊은 영국 발음을 가진 그가 미국 발음으로 연기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영국 발음을 나는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그가 의도적으로 American accent로 연기하는 것은 얼마나 큰 매력이었던지, 심지어 아래 대사는 몇 번을 돌려 들었는지 모를 정도다. 

 

" I was beginning to think we allowed this to go too far.  "우리가 선을 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But then you let Dorothy hire this nanny, and there's a f**king cherry on top." 

그런데 보모까지 고용하게 놔두다니, 씨*, 금상첨화야, 아주."
"Natalie is not a doctor."  "나탈리는 의사가 아니야."

- Julian, "Reborn"

 

사실 네이티브가 아니기에 과연 그의 American accent가 어땠는지 감히 평가를 내릴 수는 없지만 달라진 건 확실하다. 그리고 관련해서 몇몇 리뷰를 찾아보니, "nailing the mild mid-Atlantic American accent(review from Slash Film)" 라고. 역시 잘한 게 맞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숨길 수 없는 British accent. 너무 좋다. 

 

사실 션 역할의 토비 케블 Toby Kebbell도 영국 배우로 이미 American accent를 잘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고, 또한 같은 영국 배우인 리앤 역의 넬 타이거 프리 Nell Tiger Free 역시 이번 시리즈에서 보여준 억양에 대해서 호평을 받았다. <블랙 미러 Black Mirror>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The Entire History of You"에서의 토비와 <Servant>에서의 그를 비교해보면 서로 다른 발음으로 얼마나 연기를 탁월하게 하는 지 알 수 있다. 왕좌의 게임 Game of Thrones의 미르셀라 바라테온 Myrcella Baratheon 역으로 유명한 넬 역시 서로 비교해보면 꽤나 흥미롭다. 사실 리앤의 경우 약간의 이국적임, 혹은 어색함을 의도적으로 주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전형적인 발음과는 약간 다르긴 하다. 어쨌거나 배우들의 이러한 연기를 지켜보는 것 또한 매우 흥미롭다. 

 

 

 

top 1. 제리코 Jericho

 

가족의 중심. 가족의 고통. 비극의 출발점. 

 

제리코는 생후 13주만에 생을 마감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도로시 때문에 사망 신고도 하지 않았다. 마냥 없는 일처럼 지내려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리코를 똑닮은 인형이 필요했다. 도로시는 그것을 제 아들로 받아들였다. 덕분에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일터에도 복귀했고, 자신감도 되찾았다. 도로시는 그렇게 고통을 제 것으로 끝내 받아들이지 못하고 회피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마치 마음 대신 아프기라도 한 것처럼 고통에 가득 차 있다. 산후에 모유 수유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다. 그 사실 때문에 도로시 역시 괴로워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는 마냥 회피함으로서 해결할 수가 없다.  

 

션은 다르다. 션은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매순간이 생생한 고통이다. 도로시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연기를 한다. 그러나 많이 지쳤다. 아기방에서의 션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때만해도 시청자들은 제리코가 인형인 줄 모른다. 거칠게 아기를 거꾸로 들어올리고 아기의 머리가 침대에 부딪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다. 심지어 그 부딪히는 소리 조차 리얼해서 그 장면을 보던 나는 말 그대로 얼어붙어버렸다. wtf-. 션은 제리코를 닮은 인형을 앞에 두고 한참을 울었다. 그의 근심 많고 수척하던 얼굴이 설명되는 순간이었다. 내 마음이 다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줄리안은 그들과 또 다르다. 줄리안은 제리코의 부모가 아니다. 조카를 잃은 것에 대한 아픔은 어느 정도 감내한 듯 보인다. 이제 남은 그의 걱정거리는 그의 누나다. 도로시의 눈을 가려버린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해결책을 찾고 싶은데 갑자기 왠 돌보미를 고용했다니,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격이다. 그는 언제까지고 이런 쇼를 계속할 수 있을지를 걱정한다. 

 

그런데, 제리코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던 션이 제 귀를 의심하며 아기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발견한다. 인형이 아닌, 진짜 제리코다. 

 

첫 에피소드의 정점이 되는 장면이다. 당혹감과 놀라움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이런 전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정말이지 멍했다. 도로시는 제쳐두고라도 션에 대한 걱정 때문에 두려웠다. 이건 또다른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했다. 아이를 잃는 심정을 나는 감히 알 수 없지만, 그 반대의 상황에 대해서는 더욱더 모르겠다. 제리코의 등장은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됨을 예고한다. 이 변화가 불러올 후폭풍에서 이 네 사람이 어떻게 서 있을지, 바로 그 이야기의 시작이다. 이제 제리코의 실재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 그 외의 것들 *

 

* 서번트 촬영시기는 2018년 11월 ~ 2019년 3월, 해당 시즌 1 방영 시기는 2019년 11월 28일 ~ 2020년 1월 17일이다. 에피소드 1~3은 프리미어로 같은 날 공개되었으며, 이후 일주일에 한 편씩 순차 공개되었다. 

 

*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아마도 이야기를 보고 있기가 조금 괴로웠을 수도 있다. 내가 딱 그랬다. 사실 사고로든 범죄로든 뭐든 아이와 관련된 가족의 비극을 그린 영화, 드라마를 되도록이면 피하는 편이다. 가슴도 아프고 마음도 불편하고 보기가 힘들다. 도로시 역의 배우 로런 앰브로즈 Lauren Ambrose는 어린이가 된 두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아이를 잃은 상황에 대해 절절한 기분을 느끼며 배역에 몰입했을 지도 모른다. 루퍼트 그린트는 2020년 5월 경 딸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시즌 1에서 촬영에 임했을 때와 시즌 2를 촬영했을 때 소회가 남달랐다고 한다. 막 아빠가 된 그로서는 서번트가 자기에겐 '최악'의 시리즈라고. 물론 우스갯소리다.

* 실제 루퍼트 그린트는 뱀파이어 버전의 Reborn doll을 하나 가지고 있다고. (...과연 루퍼트답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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